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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홍리(大弘里)
팀명 성환읍 등록일 2015-11-30 조회 2646
첨부
 
직산군 이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홍경리, 대하리, 대정

일부가 병합되어 대정 대하리에서 대자를 홍경리에서 홍자를 따서 대홍리라 하
고 성환면에 편입되었는데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성환읍 대홍리가 되었다.

개방(開防) : 갯방죽, 한 우물(큰우물) 남서쪽에 있는 마을. 전에 방죽이 있었
는데 사금(砂金) 캐느라고 없어졌다.
대정리(大井里) : 한 우물(큰우물). 이 우물은 길가던 스님이 영기 있는 우물
이라 하여 해마다 음력 2월 2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던 우물로써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라 한 우물이라 한다.
대동네 : 광해군때 민폐를 덜기 위하여 소사(素沙)들에 대동 법을 실시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홍경사 앞에 세웠다. 이민구(李敏求)가 비문을 지었
다.
대하(大下) : 대흥 저수지 아래에 있는 마을.
복병(伏兵)재 : 복병티. 뱃봉재라고도 하는데 홍경리 앞에 있는 낮은 재(고
개).
정유재란때 명나라 장수 참정(參政) 양등산(梁登山) 부총(副總)
해성(解生)이 이곳에서 숨어 있다가 왜군을 크게 쳐부수었다고 한
다.
한우물 : 대정리(大井里) 홍경리 동쪽에 있는 마을 우물이 있는데 청일전쟁때
일본군이 이곳에 진을 치고 싸웠다고 한다.
홍경원(弘慶院)터 : 홍경사 앞에 있는 원(院)집터. 왕래하는 행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고려 제8대 현종때 함께 원을 두어서 출몰하는 도적의 피해를
막았다.
홍경잇돌(弘慶院坪) : 홍경원 앞에 있는 큰 돌. 조선 제7대 세조 10년(1464)
3월 17일에 세조가 온양온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으며 제14대 선조 30년9월8일에 명나라 장수 양등산과 해성이
이곳에서 왜적을 크게 막아 왜적 서울 진입을 막았다.
홍경사비(弘慶寺碑) : 홍경사 터에 있는 비. 높이 214cm 넓이 10cm 고려 8대
현종 17년에 한림학사 최충(崔沖)이 어명을 받아 글을 짓고 백현례
(白玄禮)가 글씨를 썼는데 홍경사의 사적을 자세히 적었으며 국보
제7호로 지정되었다.
(전설) : 비 갓위에 돌 세 개를 던져 올려 놓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아들
없는 여인들이 돌을 던져서 비 갓위에 올려 놓으려고 돌을 많이 던져
비갓이 파손되었다.
홍경사터(봉선홍경사터) : 큰 길가의 홍경사 터. 고려 제8대 현종이 그 아버지

뜻을 받들어 현종 7년(1016)에 이곳에다 큰 절을 짓기 시작하여 200여
칸의 절을 완성했으며 봉선 홍경사라 하고 승려들을 많이 모아 불법을
연구하게 하였으며 행인들을 도적으로부터 보호하였는데 공주 명학소의
망이 망소이 난때 불 타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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