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이전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이전
메뉴 닫기
천안애 살어리랏다

여행리포트

  • facebook
  • kakao
  • print
  • TOP

추천여행기

시민리포터 상세보기
작성자 황인아
구분
제목 다시 기억되는 유관순열사, 17년 만에 새 단장한 유관순열사기념관

일제의 폭력적인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학살되었고, 감옥에 투옥되면서 우리 민족은 탄압을 당했습니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던 1919년 4월 1일, 천안이 고향인 유관순열사는 가장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꽃다운 나이에 순국을 하였습니다. 


한국의 잔다르크라 불리는 유관순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 4월 1일 개관한 유관순열사기념관은 2020년 유관순열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리뉴얼을 통해 17년 만에 재개관을 하였습니다. 다가오는 삼일절을 맞아 2021년 1월 1일 새롭게 문을 연 유관순열사기념관을 찾아 불꽃처럼 살다 별이 된 유관순열사를 만나보았습니다.


입구부터 전시장 모습이 확 바뀌었습니다. 유관순열사의 생애와 연보, 학창시절, 옥중투쟁 등의 전시물이 '유관순의 횃불'이라는 디지털 실감 영상으로 교체가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켜본 유관순열사가 고향인 천안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 전개하는 모습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관순의 횃불' 디지털 실감 영상


4월 1일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거사를 알리기 위해 매봉산에서 봉화를 올림


그리고 아우내독립만세운동 디오라마와 벽관 체험관은 유관순열사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아우내독립만세운동까지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관순열사 생애와 자료 전시


1902년 12월 16일 천안 병천면 용두리 작은 마을에서 둘째 딸로 태어난 유관순은 매봉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을 했습니다. 당시 국채보상운동 등을 듣고 보며 자란 유관순은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의지를 키우게 됩니다.


유관순 출생과 성장과정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이화학당을 다니던 때에도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태극기를 그려서 기숙사 방과 교실에 붙여 소동을 일으키며, 정확하게 태극기 그리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유관순, 서명학, 김복순, 국현숙, 김희자로 구성된 5인 결사대는 조국 광복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화학당을 다니던 유관순의 학창시절 


3월 5일 서울역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었으나 바로 석방이 된 유관순은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고향인 천안에 내려오게 됩니다. 마을 어른들에게 숨겨왔던 독립선언서를 내어놓으며 만세시위에 불을 지폈고, 아우내 장터 장날인 4월 1일을 거사일로 잡았습니다. 밤새 태극기를 그리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거사 전날인 3월 31일 밤 매봉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며 각지에 알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우내독립만세운동 자료 전시


4월 1일 아침 군중들에게 숨겨온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맨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렬을 이끌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일본 헌병에 의해 눈앞에서 부모님이 총살당하고, 유관순은 일본군에게 체포되게 됩니다. 


아우내 장터에 휘날리던 태극기


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된 유관순열사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의 제1호 범죄 공용물이 된 유관순의 태극기 


천안 헌병대에서 공주 재판소로 넘겨진 유관순은 주모자라는 것 외에 일본 경찰의 고문에도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학생이었지만 주모자였던 유관순은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중형을 선고받고 경성 복심법원에 넘겨졌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이 되었습니다. 그 해 6월 30일 경성 복심법원은 초심 법원인 공주 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부 무혐의 처리를 하여 징역 3년으로 형을 감량하였습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일본인의 재판을 거부하고 고등법원에 상소를 포기하게 됩니다. 


공주지방법원 판결문


경성 복심법원 판결문


수감된 독립운동가가 이동할 때 썼던 용수와 수인복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옥중 독립만세운동을 외치던 유관순은 그때마다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1920년 3·1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어윤희 등과 옥중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여 여옥사 8호를 시작으로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후 고문에 시달리던 유관순은 방광이 파열되는 등의 후유증으로 19세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옥중 독립만세운동


3·1만세운동 1주년 여옥사 8호를 시작으로 울려 퍼진 독립만세운동


오빠 유우석과 이화학당 선생이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모셔졌지만 무덤이 훼손되어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매봉산 중턱에 초혼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후 1962년 3월 1일 서훈 3등급인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이 수여되었고, 2019년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훈이 조정되면서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 받게 됩니다. 


3·1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 유관순열사 


서훈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 여학생 유관순열사를 기리고자 마련한 유관순열사기념관은 시민들의 자료 기증과 기탁으로 영화, 책, 우표, 교과서 등의 자료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천안 아우내독립만세운동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메모리얼 벽이 마련되어 있고, 앞으로도 천안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기념할 것이라고 합니다.


나라사랑 아카이브


메모리얼 벽


다가오는 삼일절에는 암울했던 시대에 불꽃같이 짧은 생을 살다간 유관순열사를 만나러 새롭게 단장한 유관순열사기념관과 사적지를 찾아 그날의 함성을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유관순열사기념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목록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연락처 :  
최종수정일 :
2024-05-03 09:11